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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연

​민경

(@grayy_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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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서기

  눈이 내려요. 트리는 반짝이고 거리에는 캐롤 송이 울리는 날이에요. 작은 케이크를 샀어요. 눈꽃이 내려앉은 치즈케이크예요. 초는 큰 거 하나만 꽂기로 해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날이니까요. 그렇지만, 케이크를 들고 집에 들어가니 갑자기 외로워져요. 거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길래 우리 집엔 아무도 없는 걸까요? 아침에 정리하지 못한 옷들만이 나를 반겨요. 그럼 나는 괜히 입 밖으로 인사를 건네며 옷을 껴안아요. 그래도 이 두터운 스웨터는 따뜻하거든요. 그들을 씻기기 위해 세탁기에 넣고 내 몸은 욕조로 밀어넣어요. 찰랑이는 물은 얼어붙은 심장이 되었어요. 눈꽃이 폈던 건 오래 전의 일이에요. 물이 식고 있어요. 씻어내린 기억처럼 말예요. 이럴 때마다 차갑게 식어가던 아빠가 떠올라요. 그건 이상한 일이죠. 나는 그런 아빠를 본 적이 없어요. 그렇다면 이건 누구의 기억일까요. 저 멀리 어느 우주에 살고 있는 내 기억인 걸까요.그럼 참 불쌍해요. 두 번씩이나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걸요.

  오늘은 크리스마스예요. 기념으로 선물을 샀어요. 정말 보잘 것 없는 인형을요. 내 주먹만한 열쇠고리예요. 예쁘고 귀엽죠.달고 다닐 일은 없겠지만요. 가지고 다닐 일 없는 가방에 걸어놨어요. 언젠가는 아빠의 딸인 게 미울 때가 있어요. 권현석 경감님의 딸이라는 동정표가 날 따라다닐 때 말이에요. 그럴 때마다 내 자리가 없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발버둥 쳤어요.권혜연으로 남아 남는 기억을 살아갈 수 있도록요. 견고한 벽 안쪽은 제겐 너무 답답한 방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나는 벽을 부술게요, 그러니까 이제 나를 응원해줘요 아빠. 내가 초를 붙이는 그 순간부터 말이에요.

  그럼 불을 붙일게요.

  메리 크리스마스예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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