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흡수와 반사의 양극에서.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훌쩍 다가온 연말, 서울 거리 곳곳을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화려한 빛에 점철된 세상. 그 풍경을 담는 렌즈. 전선 끝에 달린 상자 하나.
어떤 이는 적색, 녹색, 청색이 한데모인 작은 상자 속에 있고, 누구는 그 상자 너머에서 세상을 본다. 매년 들려오는 똑같은 캐롤, 빨갛고 흰 공 형태의 장식, 기온이 차 뿌연 입김을 내뱉는 기자.
엄마아빠랑 하루종일 같이 지냈어요. 매일 크리스마스면 좋겠다아.
행복한 웃음. 달아오른 볼, 한껏 휘어진 눈과 입, 가족과 마주치는 시선, 그리곤 포옹.
발랄한 노랫소리 속 수많은 사람들. 화면이 변한다.
네, 이렇게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바로 경찰입니다.
푸른배경, 다갈색 단상, 그 위에 놓인 검은 마이크. 번쩍이는 플래시.
깔끔한 경찰 정복, 가지런히 놓인 태극 무궁화 두 개, 카메라를 당당히 바라보는 멀끔한 얼굴.
서울지방경찰청은 크리스마스 자선공연이 열리는 광장 일대를 통제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재미없는 이야기가 흘러간다. 어느 대로가 막히니, 모 구간에서는 극심한 정체가 예상이 된다느니 하는 것들. 따분함을 깼던 것은 마이크 앞에 선 사람의 얼굴이다. 다시 화면이 바뀐다. 정장 차림의 남자 여럿이 뉴스 데스크에 앉아 방금 전 TV 화면에 얼굴을 비춘 남자에 대해 평한다.
이미 언론에도 알려진 유명인사……, 경찰 영웅. 범죄와의 전쟁, 전국구 폭력조직 제압 쾌거의 장본인, …전래없는 승진…, 끔찍했던 조직의 만행, 희생된 경찰 간부 하나, 행방을 알 수 없는 범인.
유래없는 승진을 한 사례라는 거지요, 박근태 치안감의 경우에는.
맞습니다. 더군다나 형사과와는 상관없는 교통 대책 대변인으로 나서는 것을 보면, 대중에 얼굴을 각인시켜…
…정계에 입문한다는 소문이 돌고…
대기업 ,'백석' 그룹의 사위로 들어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문, 소문, 소문.
한순간에 세상이 새카매진다. 보이는 것이라곤 어두운 색뿐이다.
바깥 바닥에 슬슬 소복하게 쌓이기 시작했을 그 고운 빛이, 신발에, 타이어에 찍히고 밟혀 변하게 되는 그 더러운 색. 모든 빛나는 것들을 삼켜버리는 그 색.
그것을 보는 이의 얼굴마저 빨아들일 듯한 흑색.
그 수렁을 얄팍한 유릿장 하나가 막고있다. 보는 이가 스스로를 보게끔 비추면서, 그 속에 있는 너희의 모습을 보라 조롱하는 듯이. 반짝반짝 빛을 반사해 주변을 화사하게 하던 눈도, 눈을 비추는 태양도 어디에 갔냐며 일부러 물어보는 것 마냥… 그저 그렇게, 막고있다.
승진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사람이 됐다던데.
박근태 치안감은 故 권현석 경감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등 부하를 사랑하는 평소의 모습을 이번에도 보이곤…
자기보다 돋보이는 사람은 싹다 없애버렸잖아. 권현석도, 유상일도.
반면 횡령 등 십여 개에 이르는 혐의 대부분이 유죄로 확정되어 순식간에 부패경찰로 추락한 옛 부하 유 모 씨에 관해서는 깊은 유감을 표시해…
입조심해. 그 소문이 진짜면 이미 크게 터졌겠지.
…두 사건을 제외한 다른 문제가 언제 터져나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밝힌 박근태 치안감은 경찰 내부의 자정작용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향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흑색은 눈을 떠도 사라지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다시 터져나올 것처럼 가슴 속에서 아른거린다.
지금 당장에라도 터트려 빛을 덮어도 이상하지 않다.
태양도 사라지고, 눈도 밟혀 사그라든 어둑한 공간이, 그 자신의 빛을 더럽힐 것이다. 가짜 빛, 위광僞光을.
그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지, 근태 형님.